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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순위 2위였던 대우 그룹 정보 및 역사, 해체, 부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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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순위 2위였던 대기업 <대우 그룹> 기업 정보

대우그룹은 대한민국의 기업으로 1967년 3월 22일에 창립되었다. 창업주는 주산 김우중이다. 한때 재계순위 2위를 기록하고 대한민국 4대 재벌로 불렸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막대한 부채와 분식 회계로 인해서 그룹이 해체되었다. 대우그룹의 본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가 541에 위치한 대우센터빌딩이었다. 서울역에서 동편으로 나오면 정면에 바로 보이는 건물이다. 현재는 NH투자증권이 소유하고 있는 건물로 이름이 '서울스퀘어'로 바뀌었다. 대우그룹은 여러 사업분야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었다. 전자, 자동차, 건설, 화학, 금융, 조선업, 중공업, 무역 등이 이에 해당한다. 대우그룹은 창업주 김우중의 경영 능력과 소위 말하는 '인맥'을 바탕으로 성장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인맥은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과 친인척들의 금전적 지원이다. 1967년 회사를 창업한 이후에 1970년대 중동 붐을 통해 엄청난 성장을 기록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현대, 삼성, LG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또한 1980년대에는 5공 정권의 부실기업 정리 정책의 수혜를 받아 여러 기업을 인수하며 사업 확장을 했다. 1990년대에는 북방정책과 동유럽 혁명을 기회로 삼아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 진출을 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치게 되고 구조조정을 하며 위기에 대처하는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공격적인 운영을 하며 몸집을 불렸다. 결국 무리한 운영으로 인한 엄청난 부채와 분식 회계가 밝혀지며 주요 계열사가 모두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대우그룹은 공중분해되었다. 

 

<대우 그룹>의 역사

1967년 3월, 창업주 김우중이 대도섬유 사장 도재환과 공동출자하여 서울 충무로에서 무역업체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대우라는 이름은 대도섬유의 '대'와 김우중의 '우'를 딴 것이다. 대우실업은 부산의 공장에서 와이셔츠 등을 생산하여 수출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중소기업으로 머물러 있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정부 주도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성장했다. 1973년 영진토건과 동양증권을 인수하며 건설업과 금융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74년에는 동남전자를 인수하여 '대우전자'로 이름을 바꾸고 전자 부문에도 진출했다. 1976년에는 한국기계를 인수하여 중공업 사업에도 진출하였다. 1978년에는 대한조선공사로부터 옥포조선소를 인수하여 '대우조선'을 만들었다. 1979년에는 새한자동차를 인수해 자동차 사업에도 진출했다. 1981년 '(주)대우'가 출범했고 1983년에 대한전선으로부터 몇몇 사업부를 인수하여 전자, 전기사업으로 확장했다. 동유럽 시장을 개척하며 자동차 부문에서 고속 성장을 이뤘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대우그룹은 건재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하고 경영 여건이 악화되었다. IMF의 요구사항 중 하나인 기업의 구조조정을 대기업 중 제일 늦게 시작했다. 결국 위기를 넘기지 못하였고 대우자동차의 부도 등이 일어나며 대우그룹은 공중분해 되었다.

 

<대우 그룹> 해체 이유, 잘나가던 대우가 망하게 된 이유

대우그룹은 성장과정에서 다른 기업들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 왔다. 문어발식 확장으로 인해 여러 사업분야를 가지고 있었고 그만큼 몸집은 비대했다. 창업주 김우중의 경영 방식도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측면이 강했다. 김우중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공격적 투자를 선호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공격적으로 투자하여 극복하는 방식은 레버리지를 사용하여 투자를 하는 방식이다. 성공했을 경우 상당한 이득을 보게 되지만 실패를 하게 되면 막대한 부채와 리스크를 얻게 된다. 대우는 이러한 성장방식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1997년 외환 위기 때도 김우중의 경영은 비슷했다. 대우는 정부가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기로 하고 일주일 뒤에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다. IMF의 요구에 맞춰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을 줄일 필요가 있었지만 대우는 그 반대로 행동했다. 김우중이 외환 위기라는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대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30대 재벌 중 다른 기업들은 모두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하였지만 대우그룹은 그렇지 않았다. 경제 위기가 일시적일 것이라 판단하고 대출을 더 받아 위기를 극복한다는 자세를 취했다. 이러한 태도는 막대한 부채가 되었다. 1999년 대우그룹의 빚은 약 86조 원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정부의 예산이 84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부채를 지고 있던 것이다. 대우그룹은 빚을 내서 레버리지를 활용해 성장하는 방식을 고수했고 이 와중에 사기대출과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결국 갚지 못하는 부채는 각 계열사들의 워크아웃과 부도를 불러왔고 결국 그룹은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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